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누 샤이반 (문단 편집) ==== 마즈야드 왕조 ==== 야지드는 백부의 시스탄 총독직을 계승하여 유수프 알 바름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칼리파 [[알 마하디]]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구르간 총독 알 하디를 극진히 수행하였다. 그 대가로 하디의 치세에 야지드는 아르메니야 총독으로 부임하였고 비밀리에 그의 동생인 하룬을 경계하며 하디의 친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786년에 알 하디가 요절하자 결국 하룬이 칼리파로 즉위하였고 야지드는 788년에 해임되었다. 다만 3년밖에 안되는 임기 동안 야지드는 그리스도교도들을 견제하기 위해 시르반 (현 아제르바이잔) 일대에 아랍인들을 다수 이주시키는 등 캅카스 지역의 정치 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한편, 794년에는 샤이반 부족의 알 왈리드 알 타리프가 카와라지 세력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반세기 만에 샤이반 - 카와라지 봉기가 자지라 지방을 휩쓴 것이다. 그는 모술 총독을 전사시키며 기세를 올렸고 라카 총독인 아브드 알 말리크 이븐 살리흐를 라카에서 포위하였다. 이후 그들은 아르메니아 고원을 따라 이동하며 [[반 호수]] 연안의 아흐라트로부터 세폐를 받아내었고 아제르바이잔을 약탈한 후 다시 이라크로 남하하였다.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는 두 차례에 걸친 진압 시도가 모두 실패하자 결국 야지드를 소환하여 최대한 빨리 반란을 토벌하게 하였다. 795년 말, 하디싸에서 카와라지 군대와 마주한 야지드는 대장인 왈리드와의 1대1 대결 --일기토--를 요구하였고 이어진 싸움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사기가 꺾인 카와라지 군대는 붕괴되었고 반란은 칼리파의 염원대로 조속히 끝났다. 이에 하룬은 야지드를 신임하였다. 799년, 북쪽의 [[하자르 칸국]]이 캅카스를 공격해오자 야지드는 재차 아르메니아 총독으로 임명되어 그에 맞섰다. 801년에 야지드는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아사드가 총독위를 계승하며 마즈야드 왕조의 기원이 되었다. 아사드, 무함마드, 칼리드 형제는 부임과 해임을 반복하였고 그중 칼리드는 813 ~ 842년까지 총독을 맡은 후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무함마드가 계승하였으나 849년 경 해임되자 본거지인 디야르바쿠르로 돌아갔다. 이후 아르메니아의 반란 세력이 더욱 강해졌고 칼리파 [[알 무타와킬]]은 튀르크 사령관 부가 알 카비르를 파견하여 강경하게 반란을 억눌렀다. (852 ~ 855년) 이흐 무함마드가 재차 총독이 되어 무슬림 영주들과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온 가문과 싸웠으나 패하고 추방되었다. 칼리파의 왕자들인 알 압바스 이븐 [[알 무스타인]], 압달라 이븐 [[알 무타즈]] 등이 재위한 후 같은 샤이반 부족의 이사 라는 인물이 아르메니이로 부임하였는데, 그 배경은 이러하다. 861년에 무함마드의 동생 하이샴 이븐 칼리드가 아제르바이잔에 독립하여 세운 마즈야드 왕조 (시르반샤쉬)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